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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_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독서_필사발췌독/자기계발교육

by 토르본크러셔 2022. 1. 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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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시카고 대학 교수)

 

<1장 일상의 구조>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묘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 오든

 

오든의 시는 이 책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지금 이 순간과, 언젠가 불가피하게 맞이할 임종의 순간 사이에서, 살아가는 길을 택하든가 죽어가는 길을 택하든가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제대로 공급되는 한 삶은 끊어지지 않지만, 여기서 오든이 말하는 삶은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책에는 중요한 전제 세 가지가 깔려 있다.

첫째, 중요한 진리는 이미 오래전에 뛰어난 예언자 시인 철학자가 말했고 그것은 지금도 우리네 인생의 지침으로서 요긴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선각자들이 깨달은 진리는 옛날식으로 표현되었으므로 후대의 시각으로 그 안에 깃든 의미를 늘 재음미하고 재해석해야 생명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글은 절대 불변의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맹신하는 자세에도 문제는 있다.

둘째, 지금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가 주로 과학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통용되는 진리는 어차피 당대의 세계관이 반영된 언어로 표현되기 마련이어서 세월이 흐르면 그 뜻이 달라지고 결국은 폐기되는 일도 적지 않다. 고대의 신화처럼 현대의 과학에도 숱한 오해와 미신이 스며들어 있지만, 그것을 간파하기에는 우리는 현대의 과학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다. 좋든 싫든 간에 현재로서는 과학이 현실을 담아내는 가장 신뢰할 만한 거울이다. 과학을 무시하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셋째, ‘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선인들의 지혜에 귀 기울이는 한편 그 지혜를 과학이 꾸준히 축적해 온 앎과 접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과거에서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에서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다. 또 가상의 미래로 뛰어본들 우리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사실과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의 시점에서 이해하려고 꾸준히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길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의 구체적 질감, 즉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하여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느냐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서, 화학적 생물학적 사회적 과정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시간은 돈이라고 즐겨 말한 사람이 자본주의의 위대한 변호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이긴 하지만, 돈과 시간을 같게 보는 관점은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문화만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돈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주어 삶의 제약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생산, 유지, 여가라는 세 가지 주요 기능이 우리의 정력을 빨아들인다. 그러므로 삶의 성격은 우리가 직업적으로 하는 일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노력에, 그리고 남는 시간에 벌이는 활동에 좌우된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삶은 이러한 기본 좌표 안에서 펼쳐지며, 우리가 보낸 하루하루를 모두 더하였을 때 그것이 형체 없는 안개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예술 작품에 버금가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느냐는 바로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다.

 

<2장 경험의 내용>

 

감정은 의식 안의 상태를 말한다. 슬픔 두려움 떨림 지루함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에 심리적 엔트로피를 조성한다. 무질서도를 뜻하는 엔트로피 상태에 빠지면 우리는 바깥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내부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데 온통 신경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 과단성 민첩성 같은 바람직한 감정은 심리적 반()엔트로피의 상태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나 추스르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으므로 아무 걸림돌 없이 정력을 우리가 선택한 과제로 온전히 투입할 수 있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에 관심을 쏟는 것을 지향점 또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표현한다. 목표를 얼마나 끈질기고 일관되게 추구하느냐는 동기 부여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의도 목표 동기부여는 심리적 반엔트로피를 조성한다. 정신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작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면서 의식 안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질서가 없으면 정신적 과정은 두서가 없어지고 감정의 질은 급격히 저하된다.

 

 

우리는 하루의 삼 분의 일은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 삼 분의 일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하며 나머지 삼분의 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을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자발적일 때 가자 만족스러워하지만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역시 크게 불만스러워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많이 있다. 심리적 엔트로피는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일에서 가장 높이 나타났다. 결국 내적 동기부여(이것을 하고 싶다)든 외적 동기 부여(이것을 해야 한다)든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집중을 해야 할 어떤 목표도 갖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하는 상태보다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준다.

 

우리가 도달하려는 자아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다. 일관된 목표의 추구 없이 일관된 자아를 만들어 나가기는 어렵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정력을 제대로 투입해야 한 사람의 경험에 질서가 생긴다. 예측이 가능한 행동, 감정, 선택에서 드러나는 이 질서는 시간이 흐르면 개성 있는 자아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 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이보다 덜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보다 과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좌절을 자초하는 셈이다.

가령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질주할 때 우리는 몸의 움직임, 스키의 위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공기, 눈 덮인 나무에 주의를 집중한다. 갈등이나 모순을 의식할 짬이 없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았다간 눈 속에 고꾸라진다. 그러니 누가 딴 생각을 하겠는가? 활강이 너무도 완벽하여 우리는 그것이 한없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순간의 경험에 완전히 몰입한다.

 

<3장 일과 감정>

중요한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는가다. 집에서 혼자 살림을 하면서도 행복을 느끼고, 직장에서 의욕적으로 일하고, 아기와 대화에 몰입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면 눈부신 일상 생활은 결국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머리에 담긴 정보를 바꿈으로써 경험의 질을 곧바로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찰하기 전에 장소, 사람, 활동, 시간대 같은 일상의 환경이 가지는 영향력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우리가 매일 하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어떤 활동,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어떤 사람 옆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를 포착해야 한다.

 

<6장 인간 관계와 삶의 질>

 

원만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한 글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은, 식구 하나하나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가정에는 두 개의 거의 상반된 특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원칙과 자발성, 규율과 자유, 높은 기대와 무조건적 사랑의 공존이다. 좋은 사정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을 북돋우면서도 애정의 울타리 안에 묶어들이는 복합적인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 그러면서도 식구들은 필요할 때는 가족 전체로부터 정신적 후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실력을 닦고 과제를 깨닫는 기회를 갖게 되어, 살아가면서 몰입 경험을 남보다 많이 할 확률이 높다.

 

<8장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

 

빠져나가는 시간을 수수방관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늘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시간을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삶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을 통제하는 힘이다. 바깥에서 오는 자극이나 도전이 나의 관심을 앗아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즐거움을 주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력이 쌓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관계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의 태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자가 되기 위해 기도를 하고 훌륭한 이두박근을 얻기 위해 운동을 한다면 활동의 의미는 반감된다. 활동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대수롭지 않으며 나의 관심을 다스리는 데서 희열을 맛보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삶의 지배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자신의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9장 운명애>

물론 내 안에는 못되고 치졸하고 비뚤어지고 우유부단한 면이 수없이 도사리고 있지만, 난 거기서 힘을 끌어낸다. 난 그것들을 바꿀 수 있다. 그것들은 힘의 원천이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가 휘어잡을 수 있을 때 그것들은 작가의 재료가 된다.”

 

자아의 쓰레기 같은 부분을 인간 조건의 심오한 통찰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작가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건설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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