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_필사발췌독/역사철학

소피의 세계2_요슈타인 가아더

토르본크러셔 2022. 1. 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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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2_요슈타인 가아더]

 

지난 3,000년을 설명할 수 없는 이는 하루하루를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되리라. _괴테

 

목차

1

에덴동산_어느 순간에 그 무엇이 무에서 생겨났으리라

마술사의 모자_훌륭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는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다.

신화_선한 힘과 악한 힘 사이의 불균형

자연철학자들_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길 수 없다

데모크리토스_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장난감

운명_예언가는 원래 해석할 수 없는 것을 애써 해석하려고 한다

소크라테스_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아테네_폐허에서 여러 개의 높은 건축물들이 솟아올랐다

플라톤_영혼의 고향을 향한 동경

소령의 오두막_거울 속의 소녀가 두 눈을 깜빡였다

아리스토텔레스_지나치리만큼 정확한 질서를 추구한 남자가 인간 개념들을 정리하려 했다

헬레니즘_한 줄기 불꽃

우편엽서_나는 나 자신에게 엄격한 검열을 받고 있다

두 문화권_그래야만 너는 허공을 둥둥 떠다니지 않게 될 거야

 

2

중세_길을 어느 정도 되돌아간다는 것은 방황하는 것과는 다르다

르네상스_,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족속이여

바로크_꿈과 같은 질료로 만들어진

데카르트_그는 건축 현장의 낡은 재료들을 모두 없애고 싶었다

스피노자_신은 꼭두각시 조종자가 아니다

로크_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기 전의 텅 빈 칠판처럼

_그 책을 불 속에 던져버려라

버클리_불타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처럼

비에르켈리_증조할머니가 집시 여인에게서 산 요술 거울

계몽주의_바늘 만들기부터 대포 주조까지

 

3

칸트_머리 위의 별빛 찬란한 밤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

낭만주의_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

헤겔_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

키르케고르_유럽은 파산하고 있다

마르크스_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다윈_유전자를 가득 싣고 삶을 항해하는 배

프로이트_추악하고 이기적인 욕망이 그 여자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우리들의 시대_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는데

가든파티_흰 까마귀

대위법_두 가지 이상의 멜로디가 동시에 울려 퍼진다

빅뱅_우리도 별들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중세>

33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자신이 흑해 입구에 새로이 건설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지. 이 도시는 이때부터 2의 로마라고 불렸어. 395년에 로마 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었어. 서로마 제국의 수도는 로마였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새로 건설된 콘스탄티노플이었지. 410년에 로마는 이민족들의 습격을 받아 약탈당하고 황폐해졌으며, 476년에는 끝내 서로마 제국 전체가 멸망하고 말았지.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인들의 손에 함락될 때까지 유지됐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또 다른 연대는 529년이야. 플라톤이 아테나에 세웠던 아카데미아가 이해에 문을 닫았지. 그리고 같은 해에 베네딕트 수도회가 창설되었어. 베네딕트 수도회는 최초의 대규모 수도회야. 529년은 어떻게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 위를 뒤덮기 시작했는지를 상징하는 해지. 이때부터 수도원은 교습과 명상을 독점하게 되었어.

 

고대 로마 제국은 차차 서로 다른 세 문화권으로 나뉘었어. 서유럽에 라틴어를 쓰는 기독교 문화권이 로마를 수도로 해 생겨나고, 동유럽에선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그리스 정교 문화권이 자리 잡았지. 그래서 우리가 로마 가톨릭의 중세와 구별해서 비잔틴의 중세란 말을 쓰는 거야. 반면에 로마 제국에 속했던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은 중세에 아랍어를 쓰는 이슬람교 문화권으로 발전했어. 632년 마호메트가 죽은 뒤에는 중동 지방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이슬람화되었단다. 곧이어 스페인도 이슬람교 문화권에 들어갔지. 이슬람교는 메카, 예루살렘, 메디나, 바그다드를 성지로 삼았어. 문화사적 관점에서 아랍인들이 고대 헬레니즘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다는 점이 중요해. 이로 인해 그들은 그리스 학문의 대부분을 물려받았어. 중세 전반에 걸쳐 아랍인들은 수학, 화학, 천문학, 의학과 같은 학문을 이끌어나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지.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고 있지. 몇몇 분야에서는 아랍 문화가 기독교 문화를 훨씬 능가했어.

 

중세 전성기의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철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야. 그는 1225년에서 1274년까지 살았던 사람이야. 로마와 나폴리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 아퀴노에서 태어났고, 파리에서 대학 강사로 일했지. 그를 내가 철학자라고 불렀지만 신학자이기도 해. 당시에는 철학과 신학 사이에 구분이 없었거든. 간단히 말하면 아퀴나스는 중세 초기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을 기독교도화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도화했다고 할 수 있지.

 

여성의 난세포가 1827년에야 확인되었다는 걸 덧붙이는 게 중요할 것 같구나. 그러니까 자식에게 형상과 생명을 주는 사람이 남성이라고 생각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야.

 

그리스어로 소피아는 지혜

 

<르네상스>

인쿠나불라: 원래는 요람을 의미해. 서기 1500년 이전에 인쇄술이 아직 초기 단계일 때 인쇄된 초기 간행본을 그렇게 부른단다.

 

나침반, 화약, 인쇄술은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새 시대를 여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되었단다.

 

우리는 고대 로마를 도시 중의 도시라거나 세계의 중심이라고 부르곤 하지. 그러나 이 도시는 중세부터 점점 쇠락하기 시작해서 100만을 넘던 인구가 1417년에는 17,000명으로 줄어들었어.

 

르네상스 인문주의 시대에 문화 정책의 목표는 로마를 부활시키는 것이었어. 그래서 제일 먼저 성베드로 대성당이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지. 거기선 이제 실제로 중용이나 자제력과 같은 말은 어울리지 않았어. 르네상스 시대에 이름을 날린 여러 위인들이 세계적으로 가장 거대한 이 건축 계획에 참여했어. 이 작업은 1506년에 시작되어서, 꼬박 120년이 걸렸어. 그러고 나서도 약 50년 후에야 성베드로 광장이 완성되었단다.

 

17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양을 잴 수 있는 것은 양을 재야 하며, 양을 잴 수 없는 것은 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 그는 자연에 관한 책은 수학적 문자로 쓰인다고 말하기도 했어.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했어. 이것은 삶의 실제적인 효용을 강조한 말인데, 이것 역시 이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사고였지.

 

1543년에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이 나왔어. 이 책은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쓴 것인데 그는 이 획기적인 저서가 출판된 날 숨을 거두었지.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17세기 초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를 운행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포괄적인 관찰 결과를 발표했어. 그 밖에 행성이 태양에 가장 가까이 있을 때 가장 빨리 움직이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천천히 움직인다는 사실도 입증했지. 케플러를 통해서 비로소 지구가 모든 다른 행성과 똑같은 행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 그 외에 우주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도 강조했지.

 

그리고 뉴턴에겐 단순함이 제일 중요했단다. 그는 관성의 법칙과 같은 몇 가지 물리 법칙이 전 우주에 작용한다는 것도 증명했어. 행성의 운동에 관해서는 갈릴레이가 제시한 두 가지 자연법칙을 응용했단다. 관성의 법칙과, 갈릴레이의 구슬이 빗면 위에서 구를 때처럼 서로 다른 두 힘을 동시에 받는 물체는 타원 궤도로 움직인다는 법칙이지. 모든 행성이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움직이는 것은 행성이 동시에 두 가지 다른 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야. 하나는 태양계가 생길 때 태양에서 떨어져 나오려는 힘(원심력)에 의해 지배되는 직선운동이고, 또 하나는 중력에 의한 운동, 즉 태양을 향해 가까이 가려는 힘(구심력)에 의한 운동이지.

 

중세의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제와 수도사만이 성서를 읽었는데 그건 오직 라틴어 성서만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아랍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서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어.

마르틴 루터, 그는 서른다섯 살에 그리스어를 배워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힘든 작업을 해냈어. 이처럼 모국어가 라틴어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도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이지.

 

<바로크>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책 [방법서설]의 초판이야. 1637년에 인쇄된 책인데 내 애장품 가운데 하나란다.

바로크 시대의 구호

_카르페 디엠(라틴어 속담): 오늘을 즐기라

_메멘토 모리(라틴어 속담): 죽음을 기억하라.

 

스웨덴의 바로크 시대는 근본적으로 구스타브 3세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말았어. 구스타브 3세 암살 사건은 1792년에 일어났지만 아주 바로크적인 상황에서였지. 그는 성대한 가면무도회장에서 암살당했단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바로크 시대에 살았나요?
맞아, 그의 위대한 희곡들은 1600년경에 나왔단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셈이지.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이미 인생은 연극이라는 대사가 자주 등장했어.

바로크 시대의 시인들은 인생을 연극 아니면 꿈에 비유했단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어. ‘우리는 꿈과 같은 질료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이 짧은 인생은 한순간의 잠과 같다.

17세기의 중요한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물질과 영혼의 가장 큰 차이는 모든 물질적인 것은 점점 더 작은 입자로 쪼갤 수 있는 반면, 영혼은 쪼갤 수 없는 데 있다고 했지.

17세기의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철학자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데카르트까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지. 이들은 모두 명백한 합리주의자들이며, 이성을 단 하나뿐인 확실한 인식의 근원으로 간주했어. /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창시자라고 부른다 해도 과장이 아니야. 자연과 인간에 관한 새로운 발견되 도취된 르네상스 시대 이후, 또다시 동시대의 사유를 서로 연관된 하나의 철학 체계로 통합하려는 욕구가 생겨났지. 데카르트가 처음으로 체계를 세웠고, 그 뒤를 이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로크와 버클리, 그리고 흄과 칸트가 등장해.

 

가장 중요한 경험주의자 혹은 경험철학자는 로크와 버클리, 흄이야. 모두 영국인이지. 17세기의 주도적인 합리주의자들은 프랑스의 데카르트, 네덜란드의 스피노자, 독일의 라이프니츠였어. 그래서 흔히 영국의 경험주의, 대륙의 합리주의로 구분한단다.

 

로크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표상은 우리가 얻은 감각 인상에 대한 반영일 뿐이라고 확신했어. 우리가 어떤 것을 지각하기 전의 우리의 의식은 타불라 라사, ’아무것도 쓰지 않은 칠판과 같다는 거야.

 

로크는 근대 철학사에서 최초로 남녀의 성 역할 문제를 다루었어. 이 문제는 나중에 존 스튜어트 밀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돼. 밀도 남녀의 평등한 권리를 옹호한 사람이지. 로크는 처음으로 삼권분립의 원칙을 주장했단다(입법을 하는 의회, 사법은 맡은 법원,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

그런 삼분법은 원래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인 몽테스키외에게서 유래한 거야. 특히 로크가 강조한 것은 전제 정치를 방지하기 위해 입법부와 행정부가 서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이지. 로크는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통치한 루이 14세와 같은 시대 사람이야.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했어. 우리는 그를 절대 군주라고 부르지. ’그의국가는 무법 천지였어. 그런 현실 앞에서 로크는 법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려면 국민의 대표가 법률을 제정하고 왕과 정부가 그 법률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우선 1711년부터 1776년까지 산 데이비드 흄을 먼저 생각해보는 게 좋겠어. 오늘날 흄의 철학을 가장 중요한 경험철학으로 간주한단다. 또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에게 철학적 영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지.

 

불가지론자란 신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모르는 사람이야.

 

번개와 천둥은 정확히 동시에 일어나. 번개와 천둥은 단일한 방전 작용이기 때문이지. 언제나 번개가 친 다음에 천둥을 체험한다고 해도, 그것이 번개가 천둥의 원인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아. 실제로는 제3의 요인이 이 둘을 유발하지.

 

조지 버클리는 1685년부터 1753년까지 살았던 아일랜드의 주교야. 가장 철저한 경험주의자였어.

 

<계몽주의>

게몽주의의 전형적인 위대한 산물로는 사전을 꼽을 수 있어. 1751년부터 1772년 사이에 모든 위대한 계몽 철학자들의 기고로 28권으로 간행된 [백과사전]말이야.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 ’여기에는 모든 것이 있다. 바늘 만들기부터 대포 주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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