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_최경봉, 시정곤, 박영준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최경봉, 시정곤, 박영준)
“왜 세종이 한글 창제 사업에 왕자와 공주 등 왕실 가족들만 참여시켰을까?”
답: 한글 창제를 왕실 비밀 프로젝트로 추진한 것이 신권과 왕권의 대립 때문이었다고 보면 흥미로운 추론을 해 볼 수 있다.
조선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았지만 왕실이 유교적 세계관에 완전히 동화된 상태는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국정 운영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교적 이념에 투철한 사대부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왕실로서는 왕권을 강화하면서 유교적 통치 이념을 굳건히 할 필요가 있었다. 신문자, 즉 한글의 창제 사업은 이러한 필요성에서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왕실 주도로 한글을 창제하고 이 문자를 한자음 정리와 유교 경전의 번역 등에 활용한다면 왕실이 문화를 선도할 것이고 더불어 왕권도 강화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종은 왕실 가족만으로 구성된 신문자 창제 연구단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난 해는 1446년이다. <훈민정음해례>가 완성된 해인 것이다. 그러니 세종이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인경을 명했을 때는 새길 경전에 한글을 사용하겠다는 뜻이 서 있었을 것이다. 세종으로서는 자신이 만든 문자를 써서 추모의 정을 더 깊게 새기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양대군은 이러한 세종의 뜻을 받들어 석가의 일대기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이를 한글로 번역해 <석보상절>을 펴낼 것을 명하고 이에 맞춰 곧바로 <월인천강지곡>을 지은 세종은 왕비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문자로 지극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본다면 현실에 뿌리 내린 불교의 영향으로 인해 왕비에 대한 추모가 불교식으로 행해졌다는 점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해가 훈민정음을 반포한 해였다는 사실이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게 된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 서적에 앞서 불교 서적이 번역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왜 한글을 네모꼴이 되었을까?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소문자라고 한다. 자음과 모음을 나타내는 문자가 각각 따로 만들어진 것이 음소문자의 특징이다. 이들이 서로 결합해 다양한 소리를 표기한다. 그런데 한글은 음소문자이지만 또 다른 음소문자인 로마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합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한글의 네모꼴이 한자의 모양을 닮아 있다는 것이다. 표의문자인 한자는 전형적인 네모꼴을 띠고 있다. 따라서 한글은 음소문자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네모꼴이라는 한자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발음기호, 훈민정음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나서 세종이 첫 번째 지시한 작업이 운서의 번역이었다는 사실과 한글을 창제한 후 신숙주와 성삼문 등이 요동에 가서 중국의 성운학자 황찬에게 운서에 대해 문의했다는 사실은 한글 창제가 중국 한자음 표기와 관련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당시 운서를 아는 것이 중요했고, 운서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발음기호가 필요했으며, 한글은 한자음을 표기하는 발음기호로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발음기호로서 한글의 우수성을 주장한 말이다. 이는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글의 정확한 표음성은 세종 때부터 강조되었다. 정인지가 <훈민정음해례> 서문에서 닭울음 소리까지 표기할 수 있다고 한 것은 가장 완벽한 소리문자를 만들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글의 문자 모양이 발음기관을 형상한 것도 문자의 창제자가 발음기호의 개발을 염두에 두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발음기호로 고안되었기 때문에 한글이 소리문자로서 가장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소리를 나타내는 데 탁월한 문자가 우수한 문자인가?
한글은 소리의 체계를 염두에 둔 문자, 즉 발음기호로 사용할 문자였기 때문에 창제 당시에 ‘이 문자들이 문장을 표기했을 때 얼마나 잘 읽힐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에 반해 상형문자는 시각적 변별성을 가장 우선시한 문자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상형문자로부터 발전한 음소문자들이 시각적인 변별력에서 우월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 한글을 보는 눈도, 그에 대한 평가도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이제부터 한글이 소리를 나타내는 데는 최고의 문자라는 사실은 자신 있게 주장하자. 그러나 문자의 서열상 한글이 최고의 문자라고 줒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도 기억해두자. 물론 한글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최고의 문자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