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해운대] 서평

당신의 세계는 중심인가요?
1. 오선영 단편 소설집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오선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간결하고 힘있는 문체로 찰나의 순간과 감정을 낚아채 지면 위에서 되살린 솜씨가 유려하다.
중심이 아닌 주변, 30대 언저리 청춘들의 고단함, 행복의 만석과 불행의 지정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이 7편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2. 부산, 세계의 중심 (첫 번째 단편_호텔 해운대)
“뭐라카노, 니는 부산 산다고 맨날 회 처먹고, 밀면이랑 돼지국밥 먹다가 시원소주 마시면서 롯데 응원하고, 해운대 가서 바다수영 하나.”
“그게 뭐꼬.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야.”
부산, 해운데, 회, 밀면, 돼지국밥, 롯데.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들. 하지만 서울에 산다고 매일 예술의 전당에서 뮤지컬을 즐기고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소설은 라디오 디제이의 이벤트 안내 멘트로 시작된다.
수정은 사장 포함 직원이 5명뿐인 지방(부산)의 작은 출판사 직원이다. 제주도 특급호텔 숙박권일 거라 예상했던 이벤트 당첨 상품은 실망스럽게도 28년째 살아온 바로 그 도시에 소재한 호텔. 하지만 호캉스 데이트를 기대하며 마음을 부풀려 본다.
수정의 오랜 연인인 민우는 대학 캠퍼스 커플로 만난 복학생 오빠로 조별 발표 때의 든든한 아군이었으나 지금은 부산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다.
“인부산 하고 싶다, 인부산.”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살고 있는 민우는 앞으로도 부산에서 쭉 살고 싶어 한다. 민우에게 ‘인서울’은 ‘아웃부산’의 다른 말이었고 부산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살아온 터전에서 추방됨을 뜻했다.
당장은 이뤄놓은 게 많지 않은, 혹은 거의 없는 청춘들이지만 ‘위’를 쳐다보기 전까지는, 당면한 삶의 위치를 가늠할 기회가 없는 동안에는, 애써 느낄 필요가 없었던 감정이 특급호텔 숙박권으로 드러나 버리고 만다.
특급호텔, 호캉스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인지를 깨닫고는 자신의 초라함이 눈앞에 떠오르고, 올라갈 수 없는 간극을 느껴버렸을 때의 절망감, 허무감이 앞을 가로막는다.
엄마의 산악회 기념 여행용 문구가 새겨진 캐리어, 열여섯 정거장을 지나야 하는 지하철로의 여정, 그중에서도 압권은 생각지도 못한 ‘부가세 별도’, 조식은 포함이지만 그날 저녁은 비싼 호텔 중식당 대신 국밥을 먹어야 하는 현실에서 이미 우아하고 여유 넘치는 호캉스는 글러 먹었고 대신 들키기 싫은 구질구질함에 매순간 마음을 다잡아야 하지만 수정은 호텔명이 나오도록 셀카를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걸 잊지 않는다.
특급호텔을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하지만 SNS에는 그런 별세계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울에서 부산은 지방의 대명사지만 거기에도 속하지 못한 인구는 우리나라의 절반이 넘는다. 지방은 중앙에서 비켜난 곳이 아니라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세계의 중심이다. 부산이 아니어도 그보다 못한 소도시라도 개인에겐 중심이다. 중심이라 자부하는 서울의 청춘도 과히 다르진 않으리라. 중심과 변두리의 대립 대신 내가 발 딛고 선 곳, 그 중심을 살아가는 개인의 단면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3. 약자는 선해야 한다? (네 번째 단편_후원명세서)
후원을 받고 자란 윤미는 아동복지재단에 입사한다. 그곳에서 벌어진 한 헤프닝. 어린이날 선물로 갖고 싶은 물건을 묻는 후원자에게 후원 아동이 말한 것은 고가의 한정판 나이키 신발.
후원자가 글을 올리는 바람에 공식 홈페이지는 폭주하고 어린이날 특별방송을 준비하고 있던 미디어홍보팀에서는 펄펄 열을 올린다.
“시청자도 못 신는 한정판 운동화를 신겠다는 애한테 무슨 동정이 가고, 마음이 쓰여?”
결핍을 숨기며 살아온 윤미. 없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게 최선인 삶을 살아온 윤미는 후원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가 분명한 남자아이를 보고 충격에 휩싸인다.
도움을 받기 위해 타인이 원하는 자신이 되어야 하는 [키다리 아저씨]의 세계와
자신이 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알을 깨고 나가야 하는 [데미안]의 세계 사이의 충돌
‘약자는 선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이 약자에게 원하는 것은 ‘키다리 아저씨’의 세계이리라.
하지만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자.
4. 추천의 말
현재의 내 삶이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운 청춘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작가는 당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곳 역시 중심일 수 있음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