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_팀 마샬
<러시아>
러시아 사람들은 곰을 가리켜 <꿀을 좋아하는 자>라는 뜻의 메르베디라 부른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이 나라에는 적어도 12만 마리의 메르베디가 서식하고 있다.
지난 5백 년간 러시아는 서쪽으로부터 몇 차례 침략을 받았다. 1605년에 폴란드가 북유럽평원을 건너 들어왔고 1708년에는 카를 12세 치하의 스웨덴이 침공해 왔다. 또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1812년에, 그리고 독일도 1914년과 1941년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를 치공했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부터 시작해 1853년부터 1856년 사이의 크림 전쟁과 1945년까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한 시기에 러시아인들은 평균 33년에 한 번꼴로 북유럽평원 내부 또는 그 주변에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최초의 차르인 이반 4세는 <방어로서의 공격> 개념을 실전에 도입한 인물이었다. 일단 내부를 공고히 평정하고 확장한 다음에야 비로소 바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방치은 멋지게 성공했다. 이반 4세야말로 개인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이론을 증명하는 데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유럽 맹주의 자격이 무엇이든 간에 러시아가 아시아의 맹주가 아닌 이유는 꽤 있다. 먼저 이 나라 영토의 75퍼센트는 아시아 지역에 속하지만 그곳에는 인구의 22퍼센트만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상당량의 광물 자원과 원유, 가스가 매장되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보물상자임이 분명하지만 일년에 수개월은 얼어붙어 있고, 타이가(우랄 산맥에서 오호츠크 해에 이르는 침염수 삼림지대)는 광활한 삼림, 부족한 경작지, 드넓은 습지대가 펼쳐져 있는 혹독한 땅이다. 또 서부에서 동부로 가는 철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바이칼 아무르 철도 단 두 개뿐이다. 게다가 북과 남을 잇는 운송로는 전무하다시피 하니 러시아로서는 현대의 몽골이나 남쪽인 중국 내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나 물자 보급선 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한국의 경제 규모는 북한보다 80배나 크고 인구도 2배나 많다. 한국과 미국의 연합군은 궁극적으로는 북한군을 압도하겠지만, 이는 중국이 한반도에 다시 개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할 때다.
일본인은 섬 종족이다. 1억 2천7백만 명의 인구 대다수가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러시아를 마주하고 있는 네 개의 큰 섬에 살고 있으며 6,848개의 군소 섬들에는 소수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일본 열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은 혼슈로, 무려 3천9백만 명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메가시티인 도쿄가 이곳에 있다.
최단거리로만 봐도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193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웬만해선 침략을 받지 않았다. 중국만 해도 동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803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다. 물론 러시아 영토가 좀 더 가깝지만 혹독한 기후에다 오호츠크 해 너머는 거주민마저 희박해서 러시아군은 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1300년대에 중국 대륙은 물론 만주와 한반도까지 휩쓴 몽골은 일본을 침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첫 번째 침공 때는 혼이 나서 돌아갔고 두 번째 때는 폭풍우가 몽골의 함대를 집어삼켰다. 이를 두고 일본인들은 신풍(즉 가미아제)이 대한해협의 바다를 노하게 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서쪽과 북서쪽으로부터의 위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ᄋᅠᆻ고 남동쪽과 동쪽으로는 태평양밖에 없었다. 이런 시선은 일본인들이 스스로에게 닛폭, 즉 <태양의 근원>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게 했다. 동쪽을 바라보면 수평선과 자신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매일 아침 그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것은 바로 태양이었다.
<라틴 아메리카>
브라질은 현재 정치적,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주요 국가군인 브릭스로 분류된다. 사실 여기에 속한 각 나라들은 개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개념이 현실보다 훨씬 유행하고 있는 듯하다. 브릭스에 해당되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정치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의미 있게 묶일 만한 하나의 그룹도 아니며 서로 간에 공통점도 거의 없다. 이 용어의 철자를 발음대로 읽지 않는다면 브릭스라는 개념은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실제 아프리카는 미국보다 3배는 크다. 다시 표준 메르카토르 지도를 보자. 그린란드가 아프리카와 같은 크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프리카는 그린란드보다 14배는 더 크다. 미국, 그린란드, 인도, 중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까지 다 합쳐도 아프리카 대륙에 모두 집어넣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덤으로 동유럽 대부분을 집어넣을 만큼의 공간도 남는다. 우리는 아프리카가 거대한 대륙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작 지도상에서는 아프리카가 얼마나 큰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장장 6,671킬로미터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나일 강은 그 유역에 근접한 것으로 여겨지는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케냐, 르완다, 수단, 탄자니아, 우간다 그리고 이집트를 포함한 10개 나라들에 영향을 미친다. 아주 오래전인 기원전 5세기에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는 나일 강이고, 나일 강은 이집트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중동>
오스만 제국(1299~1922년)은 이스탄불의 통치를 받았다. 제국의 전성기 때는 영토가 비엔나의 초입에서 아나톨리아를 건너 아라비아로 내려가 인도양에까지 이르렀다. 제국의 권력은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는 동안 오늘날의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그리고 이란 일부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에까지 뻗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지역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이름을 붙이려는 수고를 딱히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1867년 오스만 제국은 빌라예트라고 하는 행정 구역 제도를 신설했다. 이는 현재 이라크 북부에 있는 쿠르드족이나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의 부족 연합 등 주로 그곳에 살고 있는 부족을 근거로 분할한 것이다.
이라크 지역을 모술, 바그바드, 바스라라는 세 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보다 오래전인 고대에도 이 지역들은 이 구분과 대체로 부합했는데 당시는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수메르라는 명칭으로 알려졌따. 페르시아는 그곳을 통치하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분할했으며 후일 우마이야 왕조도 비슷한 방식을 따랐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같은 지역을 보면서 원래 분할돼 있던 세 곳을 자기들 멋대로 하나로 합쳐 버렸다. 이는 어디까지나 기독교도들이 삼위 일체를 통해서나 풀 수 있는 논리적 불가능성이지, 이라크에서는 <거룩하지 않은 난장판>으로 귀결됐을 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파키스탄이라는 국호는 그 자체로도 이 나라의 분리된 상황을 여실히 알려준다. 예컨대 팍은 우르두어로 순수를, 스탄은 땅을 의미한다. 따라서 파키스탄은 <순수한 땅>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또 다른 명칭이 있다. 즉 P는 펀자브, A는 아프가니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 부근의 파슈툰 지역), K는 카슈미르, S는 신드, T는 발루치스탄처럼 <탄>을 뜻한다. 이처럼 제각기 다른 언어를 가진 다섯 곳의 서로 다른 지역들이 합쳐 하나의 국가를 형성했다. 엄밀히 따져 이는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 파키스탄은 통합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지만 펀자브 사람이 발루치스탄 사람과 결혼하거나 신드가 파슈툰과 결혼하는 일은 여전히 드물다. 펀자브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신드는 14퍼센트, 파슈툰은 13.5퍼센트, 발루치스탄은 4.5퍼센트를 차지한다. 여기에 종교적 긴장감 또한 여전히 남아 있다. 지방의 소수 기독교와 힌두교 집단들을 겨냥한 증오 행위뿐 아니라 다수인 수니파와 소수인 시아파 무슬림 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 결국 파키스탄은 한 국가 안에 여러 나라들이 담겨 있는 형국이다.
<북국>
북극 접경 국가인 이른바 북극연안 5개국은 캐나다, 러시아,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그린란드를 책임지고 있으므로)를 말한다. 여기에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웨덴이 합세해 북극이사회가 탄생했다. 그리고 북극권 국가들의 자주권, 주권, 재판권을 인정하는 정식 옵서버(의결권을 가지지 않는 참가 자격) 12개국이 더해진다. 일례로 2013년에 북극이사회는 북극에 대한 과학적 탐사를 지원하는 일본과 인도, 현대식 쇄빙선을 보유하고 노르웨이 섬에 과학기지를 설치한 중국을 옵서버로 받아들였다. (한국도 2013년 5월에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쇄빙선 한 척을 건조하는 데만 10억 달러의 비용과 1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미국 해안 경비대가 발간한 2013년판 리뷰만 봐도 러시아는 총 32척의 쇄빙선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쇄빙선 함대를 보유한 선도적인 북극권 국가인 것이 확실하다. 그 가운데 6척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핵추진 쇄빙선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2018년에 또 다른 초강력 쇄빙선을 가동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3미터 이상의 두꺼운 얼음을 깰 수 있을 뿐 아니라 7만 톤급 이상의 유조선을 견인해서 빙원을 통과할 수도 있다.
<맺음말>
1961년 27세의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여행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성층권을 돌파한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같은 소련 사람인 가가린보다 AK-47 소총을 개발한 칼라슈니코프라는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진 것을 볼 때 인류 역사의 씁쓸한 단면을 반추하게 된다.
유리 가가린, 버즈 올드린(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로 닐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 착륙에 성공한 사람) 외에도 마르코 폴로와 콜럼부스의 후에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경계를 넘고 변화를 이끌어낸 선구자들이었다. 핵심은 그 결과의 좋고 나쁨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고, 자연이 준 것에서 최대치를 얻어내기 위해 경쟁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물론 많은 세월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우주에도 깃발을 꽂을 것이다. 영토를 정복하고, 그 귀속권을 주장하고, 그러면서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주가 세워둔 장벽을 극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