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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평전_최영묵, 김창남

독서_필사발췌독/인문사회과학

by 토르본크러셔 2022. 1. 1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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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평전_최영묵, 김창남] 더불어 숲으로 가는 길

 

한 줄 요약: 신영복의 인생과 저서에 관한 총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감옥 생활 20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간문집이다.

 

* 쇠귀가 공부를 이야기하면서 강조했던 변화와 창조의 의미는 문화 예술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예술은 사물이나 인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합니다. 그 특징의 하나가 클로즈업하는 것입니다. 야생화 한 송이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유심히 주목하면 하찮은 삶도 멋진 예술이 됩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훌륭한 회화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것을 액자에 넣어 사람들에게 들어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술의 본령은 우리의 무심함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예술에 대한 쇠귀의 관점에서 핵심은 인식의 확장, 즉 새로운 앎의 추구라는 가치에 있다. 그는 미, 아름다움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한다.

 

미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글자 그대로 ‘앎’입니다. 미가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은 미가 바로 각성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각성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이고 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모름다움’이라고 술회합니다. 비극미가 된다는 것은 비극이야말로 우리를 통절하게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얇은 옷을 입은 사람이 겨울 추위를 정직하게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한매, 늦가을 서리 맞으며 피는 황국을 기리는 문화가 바로 비극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입니다. 우리가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세상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 공부를 통한 변화와 창조는 만년의 쇠귀가 가장 강조한 대목이다. 그는 이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가는 가장 먼 여행이라 불렀다. ‘타자화에서 공감으로, 그리고 실천으로 가는 여정이다.

 

*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자연을 통해 영원으로 간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자연인 스승을 보내는 자리지만 반대로 영원한 스승 신영복을 맞는 자리입니다.

 

쇠귀는 20161152130분경 자택에서 별세했다. 1941823일 경남 의령 유곡공립보통학교 교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 사상이 삶의 현장에서 분리되는 과정이 관념화이고 물신화다.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상과 마주치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검증되고 구현되어야만 사상이라 할 수 있다.

* 쇠귀 사상의 핵심은 인간관계 중심의 성찰적 휴머니즘, 사회경제적 관점에 근그한 역사 인식, 자본주의 비판, 사회 변혁을 위한 실천 이론으로 정리할 수 있따. 쇠귀는 자본주의를 상품자본으로 설약한다. 자본주의 역사는 모든 대상에 대한 상품화의 역사이자 확대 재생산을 법칙으로 한 자본 축적의 역사다.

 

설약: 복잡한 것을 시적인 틀에 담아 간명하게 요약함을 말한다.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하자면 시적인 틀에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가 그것을 설약이라고 했습니다. 시는 설약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상품이 화폐로, 화폐가 자본으로 발전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이다. 상품의 최고 형태가 화폐라면, 화폐의 최고 형태가 자본이다. 자본은 스스로 증식하는 가치를 말한다. 모든 자본은 반드시 자본 축적으로 이어져야 존속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역사는 자본 축적의 역사다.

 

자본: 자는 불어난다는 뜻이다. ‘캐피탈카푸트라는 소를 세는 단위(마리)에서 기원한 말이다. 소도 우유를 만들고 새끼를 낳는 등 계속 증식한다.

 

* ‘자본 축적은 노동을 소외시킨다.’ 이것이 자본 축적에 대한 1차적인 인문학적 선언이다. 10시간 소요되던 노동이 기계와 신기술 도입으로 2시간으로 줄어들 경우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아니라 8명의 해고로 나타난다. 지난 2017년 말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는 제작 공정에 로봇을 도입해 600명이 일하던 회사의 노동자 수를 10명 안팎으로 줄인 바 있따. 10명의 노동자가 매년 50만 켤레가 넘는 운동화를 만든다. 노동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노동이 소외된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궁핍화란 사회 내에서 노동의 지위가 약해져 자율성을 상실하고 종속된다는 의미다.

 

*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공황이 대체로 10년 주기로 일어났다. 전쟁과 군수 물자 생산, 재정 지출이 유력한 공황 수습 대책이었다. 1919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10년 후인 1929년에 대공황이 발발한다. 10년 후인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10년 후인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1960년대가 되면 베트남전쟁이 시작되고, 1970년대에는 1,2차 석유 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다시 공황 상태에 빠진다. 1980년대에 레이건과 대처가 등장해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든다. 1989년에는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되었고, 1990년에는 걸프전쟁이 일어난다. 미국은 2003년에 이라크를 침공했고, 2008년에는 리먼브라더스사 파산으로 금융 위기가 세계화된다. 이처럼 자본 축적 과정은 주기적인 공황 그리고 전쟁과 짝을 이룬다. 공황은 취약한 자본을 파산시켜 독점화를 부추긴다.

 

* “무기수는 출소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뭔가 살아갈 의미가 있어야 해요. 결과적으로 인생이란 게 그런 게 아닌가 해요. 삶 자체가 과정이 아름다워야 하고, 뭔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깨달음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아마 무기수라는 어쩌면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이 인생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열어 주기도 하지않을까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 [금강경]의 문자를 이해하고 암송하는 것과 그걸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언어는 방편일 뿐, 깨달음의 세계는 불립문자다.

 

* 그리스 희극이 인간을 무대 위에 세워 그 우매함을 반성하는 것이라면, 그리스 비극은 신과 영웅과 왕들에 대한 저항 의지를 결의하는 시민 철학의 대장간이었습니다. 삶의 현장에 구조화되어 있는 빈부와 성과 계급 간의 갈등이 키워 온 갖가지 소이를 대동화하는 용광로가 바로 이곳 디오니소스 극장이었습니다.

 

* 중국 당나라의 시인 가도(779~843)가 쓴 시 [이응의 시골집에서]의 한 구절로 조숙지변수의 대구다.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승고월하문)”라는 뜻이다. 가도는 처음에 스님이 문을 떠미네()’로 썼다가 두드리네()’가 떠올라 수일간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던 중 길에서 당대의 대문호 한퇴지를 만나 조언을 듣고 두드리네()’로 정했다고 한다. ‘퇴고(推敲)’라는 말의 유래다.

 

* 사회적 약자의 위악과 사회적 강자의 위선을 떠올려 대비하기는 쉽지 않다.

 

* 대비는 직접 설득하는 것보다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을 반대의 것과 대조, 대비, 병치함으로써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쇠귀가 말하는 대비란 대립 관계나 결정론을 극복하기 위한 사유의 틀이고 가장 기본적인 관계망을 의미한다. 좌와 우는 상호보완 관계로 봐야 한다. 우리가 쉽게 서구의 인과론이나 결정론에 빠지는 것은 그 단순 명료성 때문이다. 분절, 단절되어 있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틀이다. 인과론, 환원론, 결정론은 단순 무식한 틀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쇠귀는 우리의 인식틀을 바꾸기 위해 좌우와 상하로 배치되어 있는 개념들을 길게 나열한 후 구부려 원을 만든다.

 

개념의 틀을 원으로 만들어 보면 좌우와 상하가 서로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옛날에는 공부를 구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도에는 반드시 고행이 전제됩니다. 그 고행의 총화가 공부입니다. 공부는 고생 그 자체입니다.

 

* 우리는 생각이 뇌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오감의 작용을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이다. 생각이란 가슴으로 대상을 포용하는 것이며,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다. 공부를 머리 중심의 이성적 사고에서 애정과 공감의 장인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다.

 

* 시 한 편의 세계는 매우 크다. 시는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틀이고, 특히 사물의 변화를 읽으려 할 때 뛰어난 관점을 시사한다. 시가 가진 기승전결의 전개 구조가 사태의 진전과 사물의 변화를 전형화한 변화의 틀이기 때문이다. 사물과 사물의 집합 그리고 그 집합의 시간적 변화라는 동태적 과정을 담는 틀이며 리듬이다.

 

* 삶은 가르치고 배우는 연쇄적 과정이다. 누구든 누군가의 스승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제자다. 언제나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없고, 마찬가지로 늘 배우는 위치에만 있는 사람도 없다. 우리의 삶 자체가 배움과 가르침의 변증법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사제의 연쇄를 더듬어 확인하는 일이 곧 자신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길이다.

 

* 쇠귀가 즐겨 썼던 글 중의 하나라 아라공의 시 구절인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구절에 이어지는 대구는 배운다는 것은 성실을 가슴속에 새기는 것이다이다.

 

* 공부는 성찰과 깨달음을 위한 것이다. 동시에 지적 허영과 냉소를 극복하는 일이다.

 

*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는 근대의 아이콘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1492년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신대륙 발견이 자본주의의 원시 축적이 시작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은 21세기에도 금융 자본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세계 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석유 결제 화폐가 달러라는 사실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그로 인해 미국 달러가 국제 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 대금으로 받은 달러가 미국 상품에 대한 유효 수요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오일 달러가 미국의 금융을 받쳐 주는 토대라는 사실이다. 미국 증시를 뒷받침하기도 하고, 미국의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를 메우는 재원이 되기도 한다.

쇠귀는 미국이 지난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도 석유 결재 화폐로서 달러가 가진 지위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후세인이 석유 결재 화폐로 유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달러가 국제화폐, 기축 통화로서 지위를 상실할 경우 미국 경제는 하루아침에 붕괴될 수도 있다. 산업 자본이 자연과 노동을 수탈하는 것이라면, 금융 자본은 대자본이 소자본을 수탈하는 파괴적 시스템이다. 상품사회는 화폐 권력이 지배하고 화폐 권력은 그 자체가 허구이며, 이러한 파괴적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것이 전쟁 국가인 미국의 군사력이다.

 

*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세계를 담아내는 오토 딕스나 케테 콜비츠의 작품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우리가 처한 세계의 실상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하면서 세계 인식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파놉티콘이란 그리스어에서 모두를 뜻하는 본다를 뜻하는 옵티콘을 합성한 말이다. 제러미 벤담은 보이지 않는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이 말을 했따. 벤담에 따르면 감옥의 본질은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부패는 개인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무한 경쟁 시스템이 원인이다. 모든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안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살고 있따. 하지만 결국 자기 그림자와의 경쟁이기 때문에 승리는 무덤에서나 할 수 있따. 사활을 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직한 방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사회의 부패는 개인 윤리 문제라기보다는 치열한 자본 축적 과정의 필연적 사회 현상이다.

 

쇠귀에 따르면 시간은 영원한 현재가 흘러가는 현재사를 자기의 내용으로 갖는다.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 속에 피는 꽃이다. 역사는 강물의 속도로 강물과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진보란 미래를 선취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결코 선취될 수 없다. 현재의 모순을 직시하는 것이 미래를 선취하는 방식일 뿐이다. 현재와 미래의 엄청난 비대칭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타자인 미래를 주체화하고 주체인 현재를 타자화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막히면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면 소통하게 되고, 소통하면 그 생명이 오래간다.”

 

쇠귀는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소설에 나오는 가난한 청년 이야기를 예로 든다. 디킨스는 빵과 치즈를 살 수 없게 된 가난한 청년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대해 썼다. 그 청년은 추위와 배고픔이 아니라 단골로 다니던 빵가게 아주머니가 이제는 다른 가게에서 빵을 구입한다고 자신을 오해할까 봐 몹시 괴로워한다. 아픔은 관계에서 오는 것이고 그것이 가난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양심은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이다. 양심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휴머니즘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사회를 포용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쇠귀는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일생에 들어가 있는 시대의 양을 준거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의 아픔을 비켜 간 삶을 정직한 삶이라고 할 수 없으며, 더구나 민족의 고통을 역이용해 자신을 높여 간 삶을 정직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팔자는 민족의 팔자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자기의 이유를 줄인 말이 자유다. 자유란 자기의 이유로 사는 것이다.

 

남명 조식(1501~1572)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에 뜬 배에 지나지 않으며 배는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지론을 거침없이 갈파했고 탐관오리들을 질타했다.

 

상형문자인 한문은 글자와 대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표의문자인 한글의 경우 글자는 대상의 상징일 뿐이다.

 

사마천은 이들과 상관없이 계속 썼다. 집필 14, 부형의 화를 당한 지 8, [사기]는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사기] 130526,500자가 완성된 것은 한 무제가 죽어 갈 무렵이었다.

 

[한비자]에 나오는 화씨의 구슬이야기는 우매한 군주를 깨우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고사다. 한비자는 진나라로 갔지만 동문수학한 이사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사약을 받는다. 법치의 핵심은 군주의 자의성을 제한하고 성문법에 근거해서 통치하는 것이다.

 

시는 어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세계를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문사철보다 더 정직한 세계 인식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문사철이 복잡한 현실을 압축하는 추상력의 세계라면, 시서화는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읽는 상상력의 세계다. 공부는 추상력과 상상력을 유연하게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춘추전국시대는 72개 제후국이 춘추 5(제나라의 환공, 진나라의 문공, 초나라의 장왕, 오나라왕 합려, 월나라 왕 구천), 전국 7(전국시대부터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무렵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나라인 연, , , , , , 한을 말한다.)으로 재편되는 대혼란의 시기였다.

 

위선이 강자의 의상이라면 위악은 약자의 생존 방법이다. 동물의 보호색이나 조폭의 문신은 모두 약자의 존재 방식이다. 모든 권력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나타난다. 삶의 현장에서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벗기는 것이 공부다.

 

[신영복 평전_최영목, 김창남]

 

쇠귀에 따르면 시간은 영원한 현재가 흘러가는 현재사를 자기의 내용으로 갖는다.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 속에 피는 꽃이다. 역사는 강물의 속도로 강물과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진보란 미래를 선취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결코 선취될 수 없다. 현재의 모순을 직시하는 것이 미래를 선취하는 방식일 뿐이다. 현재와 미래의 엄청난 비대칭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타자인 미래를 주체화하고 주체인 현재를 타자화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막히면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면 소통하게 되고, 소통하면 그 생명이 오래간다.”

 

쇠귀는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소설에 나오는 가난한 청년 이야기를 예로 든다. 디킨스는 빵과 치즈를 살 수 없게 된 가난한 청년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대해 썼다. 그 청년은 추위와 배고픔이 아니라 단골로 다니던 빵가게 아주머니가 이제는 다른 가게에서 빵을 구입한다고 자신을 오해할까 봐 몹시 괴로워한다. 아픔은 관계에서 오는 것이고 그것이 가난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양심은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이다. 양심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휴머니즘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사회를 포용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쇠귀는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일생에 들어가 있는 시대의 양을 준거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의 아픔을 비켜 간 삶을 정직한 삶이라고 할 수 없으며, 더구나 민족의 고통을 역이용해 자신을 높여 간 삶을 정직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팔자는 민족의 팔자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자기의 이유를 줄인 말이 자유다. 자유란 자기의 이유로 사는 것이다.

 

남명 조식(1501~1572)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에 뜬 배에 지나지 않으며 배는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지론을 거침없이 갈파했고 탐관오리들을 질타했다.

 

상형문자인 한문은 글자와 대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표의문자인 한글의 경우 글자는 대상의 상징일 뿐이다.

 

사마천은 이들과 상관없이 계속 썼다. 집필 14, 부형의 화를 당한 지 8, [사기]는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사기] 130526,500자가 완성된 것은 한 무제가 죽어 갈 무렵이었다.

 

[한비자]에 나오는 화씨의 구슬이야기는 우매한 군주를 깨우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고사다. 한비자는 진나라로 갔지만 동문수학한 이사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사약을 받는다. 법치의 핵심은 군주의 자의성을 제한하고 성문법에 근거해서 통치하는 것이다.

 

시는 어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세계를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문사철보다 더 정직한 세계 인식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문사철이 복잡한 현실을 압축하는 추상력의 세계라면, 시서화는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읽는 상상력의 세계다. 공부는 추상력과 상상력을 유연하게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춘추전국시대는 72개 제후국이 춘추 5(제나라의 환공, 진나라의 문공, 초나라의 장왕, 오나라왕 합려, 월나라 왕 구천), 전국 7(전국시대부터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무렵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나라인 연, , , , , , 한을 말한다.)으로 재편되는 대혼란의 시기였다.

 

위선이 강자의 의상이라면 위악은 약자의 생존 방법이다. 동물의 보호색이나 조폭의 문신은 모두 약자의 존재 방식이다. 모든 권력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나타난다. 삶의 현장에서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벗기는 것이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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