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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_벤저민 프랭클린

독서_필사발췌독/자기계발교육

by 토르본크러셔 2022. 1. 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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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_ 벤저민 프랭클린

 

한 줄 요약: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타인에게(공익을 위해), 그리고 특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인생경험담. 생활태도 면에서나 독학을 하고 책을 읽고 스스로의 인생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했고, 수십년 동안 죽을 때까지 그러니까 온 생애를 바르게 산 사람의 본받을 만한 이야기.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 84)

미국의 문필가, 과학자, 발명가이자 정치가로서 오늘날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함께 나란히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진 미국 건국의 아버지중 한 사람이다. 그는 1706년 아메리카 식민지의 보스턴에서 가난한 집안의 열일곱 남매 중 막내아들(첫 아내로부터 4명의 아이를 더 두셨지만 사별하셨고, 두 번째 아내로부터 10명의 아이를 두어서 총 17명의 자식을 낳았다. 나는 뉴잉글랜드의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들 중 막내였고 아래로 누이동생이 둘 있었다.)로 태어났다.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은 8세 때부터 2년간 학교에 다니며 읽고 쓰기와 산수를 잠깐 배운 것이 전부였지만, 1790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여러 외국어와 문학, 신학, 경제학, 자연과학을 독학으로 마쳤다. 10세 때부터 비누와 양초를 만들던 아버지 밑에서 일했으며, 12세가 되던 해에 인쇄소 견습공을 시작해 풍자가, 정치이론가, 사회 개혁가, 그리고 외교관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명망을 떨쳤다. 또한 과학자이자 발명가로서 자신만의 전기 이론을 만든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스토브, 피뢰침, 시계초침, 이중초점안경 등 여러 가지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공익에도 관심이 많아 미국 최초의 공립 도서관을 설립하고 펜실베이나 최초의 소방서를 세우기도 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미국 펜실베이나 행정위원회 위원장, 2대륙회의 펜실베이니아 대표, 영국 로열소사이터 회원, 미국 필라델피아 시의회 의원 등의 요직을 역임했으며 1753년에 과학계의 최고상인 코플리상을 수상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삶이 진솔하고 정직하게 담겨 있는 책.

아들에게 남기는 일기(혹은 편지) 형식/ 미국 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자 자기 계발서의 진정한 원조로 평가받는 책

 

가난한 집안의 열일곱 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10세 때 정규 교육을 중단해야 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엄격한 규율을 통해 극복하고 스스로 터득한 지혜와 성실한 삶의 태도를 미국에 널리 전파한 선구자였다. 이 때문에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자서전은 전 세계 여러 나라의 필독서로 꼽힐 만큼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쇄소 일을 하면서도 남들에게 성실함을 인정받기 위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도 기꺼이 포기했고, 미국인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음에도 절대로 잘난 척하지 않았다. 또한 매일 저녁 본인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며, 종교부터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편협함을 버리고 공정한 태도를 고수했다. 만약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다거나 곤경에 빠져 있다면, 혹은 나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프랭클린이 발명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끊임없이 재창조된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_월터 아이작슨(미국의 저명한 전기작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형이 운영하는 인쇄소의 인쇄공부터 시작해 출판업자, 저술가, 신문발행인, 철학가, 외교관, 그리고 발명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떨쳤다.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여러 외국어와 문학, 신학, 경제학, 자연과학을 독학으로 마쳤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엄격한 규율을 통해 극복하고 스스로 터득한 지혜와 성실한 삶의 태도를 미국에 널리 전파한 선구자였다.

 

<스펙테이터>라는 잡지. 잡지에 기고된 글의 문장들이 하나같이 유려해서 어떻게든 배워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침내 나는 몇 페이지를 골라 문장의 키워드만 간단히 메모해두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에 책을 보지 않고 발췌해두었던 단어들을 문맥에 맞추어 옮기되 예전의 문장을 복원해보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리고 원문과 내가 쓴 모사 글을 비교해보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풍부한 어휘력과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만약 계속 시를 썼다면 이런 능력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시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같은 의미를 가진 다양한 단어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어의 마술사처럼 다양한 표현들을 능숙히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잡지에 실린 글을 골라서 이를 시로 바꾸어 썼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원래 글이 희미해질 무렵 시를 다시 산문으로 고쳐서 썼다. 때로는 산문을 요점 정리해서 앞뒤를 섞었다가 몇 주 후에 올바른 순서대로 배열하고 완벽하게 원문으로 복원하는 연습도 했다. 그렇게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터득했고 잘못된 점을 고치면서 어휘와 글쓰기 기법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기뻤다. 이렇게만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괜찮은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글쓰기 훈련은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난 저녁 시간이나 이른 새벽, 그리고 일요일에 주로 이루어졌다. 다들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리러 갔지만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교회에 가지 않고 인쇄소에 혼자 남으려 기를 썼다.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할 때는 교회를 빠질 수 없었다. 매주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요일 말고는 따로 시간을 내서 글쓰기 훈련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고록]을 구해서 논쟁법의 다양한 예를 확인했다. 덕분에 상대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싸우듯이 논쟁하기보다는 겸손한 태도로 질문을 던지고 상대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기술을 익혔다.

 

 

그 당시 회원제 도서관을 세우기 위해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내 이야기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느낀 점은 아무리 유익한 제안이라고 해도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인간은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유명해지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본성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꾸어서 되도록 나 자신을 감췄다. 다른 친구들이 세운 계획이며 당신도 독서를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기에 이렇게 찾아오게 된 거라고 말했다.

 

13가지 덕목을 스스로 만들고, 일주일에 하나씩 중점을 두어 지켜나가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활용해서 실천함.

 

절제: 배가 부를 정도로 먹지 말라.

침묵: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은 말은 피하라.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

규율: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어라. 모든 일은 시간에 맞추어 하라.

결단: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실행에 옮겨라. 일단 결심한 것은 반드시 이행하라.

절약: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은 일에 돈을 쓰지 말라. 즉 낭비하지 말라.

근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항상 유익한 일을 하라.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도 말라.

정직: 다른 사람을 기만하지 말라. 악의 없이 공정하게 생각하라. 말과 행동이 일치되도록 하라.

정의: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때를 잊어서는 안 된다.

중용: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말라. 상대가 나쁘게 행동하더라도 홧김에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

청결: 몸을 청결히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주변을 깨끗이 하라.

평정: 사소한 일이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혹은 불가피한 상황에도 평정심을 잃지 말.

순결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실제로 내가 겸손이라는 덕목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꽤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의 의견에 무조건 반기를 든다거나 나의 생각을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일을 삼가기로 원칙을 세웠다. 또한 전토 클럽의 규칙에서도 언그했던 것처럼 분명’ ‘의심할 나위 없이같은 표현 대신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내 생각은 이러하다.’ ‘제 짐작으로는 그렇습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이라고 말하는 편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도 곧바로 반박하지 않았고, 상대의 부조리한 부분을 지적하지도 않았다. 대신 당신이 주장하는 부분은 다른 상황에서는 맞는지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전보다 훨씬 기분 좋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겸손한 태도로 의견을 주장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욱 쉽게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혹여 내 의견이 틀렸을 때도 창피함이 덜했고, 내 의견이 옳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도 쉽게 잘못을 인정하고 나의 편이 되었다.

처음에는 타고난 성격과 잘 맞지 않아서 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점차 자연스러워졌고 어느새 몸에 배어 버렸다. 지난 50년 동안 우연히라도 내가 독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대학 재단 이사회는 지사의 승인을 받아 법인으로 발족되었다. 영국 정부의 후원금과 영주들의 토지 기증, 그리고 의회에서 지원해준 돈으로 대학 기금은 눈처럼 불어났다. 그렇게 현재의 펜실베이나대학교가 설립되었다. 나는 창립부터 지금까지 약 40년간 대학 이사의 자리를 지켜왔다.

 

조언이라면 얼마든지 해드리지요. 먼저 목사님이 보기에 기부금을 낼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세요. 그리고 기부를 할지, 하지 않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먼저 기부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을 보여주세요. 마지막으로 절대로 기부를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겁니다. 어쩌면 목사님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쓴다고 무조건 비난할 일도 아니다. 행복이란 어쩌다 한 번 생기는 커다란 행운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편리함에서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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