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플라톤의 글 가운데 [국가]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사랑받는 책으로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연회에서 ‘연애’의 신인 ‘에로스’를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데아’를 관조하고 직관하는 경지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에로스’가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기원전 416년에 아가톤이 비극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향연에 참석한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에로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눈 대화
* 아가톤: 비극 경연 대회에서 자신이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소크라테스와 지인들을 초대하여 향연을 베푼 인물이다. 그는 비극 작가로서 당시에 30세쯤 된 청년이었고, 이 글에 등장하는 파우사이나스와 ‘에로스’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중에 기원전 411-405년 사이에 마케도니아의 왕 아르켈라오스의 궁정으로 초빙되어 갔다가 거기에서 400년경에 죽었다.
* 파우사니아스: 아가톤과 ‘에로스’ 관계에 있었고 기원전 411-405년 사이에 아가톤이 마케도니아로 갈 때도 함께 갔다. 그에 관한 다른 것은 전해진 것이 없다.
* 파이드로스: 소크라테스의 추종자로서 아테네의 미르리누스 구역 사람이었다. 에릭시마코스와 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 에릭시마코스: 의사로서 파이드로스와 친한 사이였다.
* 아리스토파네스: 기원전 450-386년경에 활동한 아테네에서 가장 유명했던 희극작가였다. 그의 작품 11편이 전해진다. 소크라테스와 아가톤 등을 비롯한 당시의 여러 인물을 풍자한 희극들을 썼다. 그가 쓴 [구름]은 소크라테스를 희화화한 작품이다.
* 알키비아데스: 기원전 451-404년에 활동한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다. 명문가문 출신으로 아름다운 외모와 재능과 총명함을 다 갖춘 인물이었고, 일찍부터 정치가로 활동하였다. 이 글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절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목격하고 들려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 고대 그리스에서는 장성한 성인 남자가 어린 소년이나 젊은이를 자신의 연인으로 삼는 방식으로 동성애가 이루어졌다. 이때에 ‘에로스’(연애)를 주도하는 성인 남자를 그리스어로 ‘에라스테스’(연애하는 자)라고 했고, 그의 어린 연인은 ‘파이디카’(사랑받는 소년) 또는 ‘에로메노스’(사랑을 받는 자)라고 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에라스테스’는 ‘파이디카’를 훌륭한 사람이 되게 이끌어주는 후견인 역할을 했다.
*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열두 신 중 하나로 미와 성애의 여신이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하고,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우라노스의 잘린 성기에서 흐른 정액이 바닷물과 섞여 생겨난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디오네’는 티탄 신족에 속한 여신으로 제우스의 연인이었다. ‘우라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신으로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혼자 낳은 아들이다.
* 라케다이몬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파르타의 창설자이다. 라코니아 왕 에우로타스의 딸 스파르타와 결혼하여 장인의 왕국을 물려받아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아내의 이름을 따서 스파르타로 명명했다. 따라서 스파르타는 그가 건설한 수도의 이름이었고, 라케다이몬은 그가 건설한 왕국의 명칭이었다. 하지만 후대로 가면서 이 왕국은 점차 스파르타로 불리게 되었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6세기 말에 활동한 에페소스 출신의 고대 그리스 사상가로서 소크라테스 이전 시기의 주요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고 주장했고, 대립물 간의 충돌과 조화, 다원성과 통일성의 긴밀한 상관관계, ‘로고스’ 개념을 종합한 철학을 제시했다. 그가 말한 ‘로고스’는 늘 변화하는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주도하는 우주 지성이었다.
* ‘거인족’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아들 크로노스에게 남근이 잘렸을 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그 피를 받아 잉태하여 낳은 거인들로 그리스어로는 ‘기간테스’라 불린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뱀으로 되어 엄청난 힘을 지닌 이 거인족은 올림포스 신들을 공격했다가, 제우스와 헤라클레스의 협공을 받아 최후를 맞이한다.
* 크로노스와 이아페토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티탄 열두 신에 속한 신들이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 거세시키고 나서 우주의 지배자인 최고신으로 등극하는데, 그에게서 제우스가 태어난다. 이아페토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버지이고, 프로메테우스는 대홍수 이후 인류의 조상이 된 데우칼리온과 피라 부부를 낳았다. 이 부부 사이에서는 헬라스(그리스)인의 조상인 헬렌이 태어났다.
* 소크라테스의 대사: 이방의 예언자: 각각의 생물이 살아서 동일한 것으로 불리는 동안에도 생식 활동은 계속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같은 사람으로 불린다 해도, 그의 머리카락과 살과 뼈와 피를 비롯해서 그의 몸 전체가 계속해서 늘 새롭게 되고 이전에 있던 것들은 소멸됩니다. 그 사람은 자기 속에 동일한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닌데도 동일한 사람으로 불리죠.
이러한 생식 활동은 몸만이 아니라 영혼에서도 일어나서, 습관과 품성과 생각과 욕망과 쾌락과 고통과 두려움 같은 것들은 그중 하나라도 각 사람 안에서 결코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고, 어떤 것들은 생성되고 어떤 것들은 소멸되지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 한층 더 기이한 일은 우리의 지식들도 어떤 것은 생성되고 어떤 것은 소멸되어서, 지식에 있어서도 동일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는 때가 한시도 없다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가 지닌 개별 지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습이라고 불리는 것도 우리의 지식이 떠나가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죠. 망각은 지식이 떠나가는 것이고, 학습은 떠나가는 기억 대신에 새로운 기억을 다시 만들어내 지식을 보존함으로써, 마치 동일한 지식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니까요.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필멸의 존재는 바로 그런 방법을 통해서 자신을 보존합니다. 즉, 그들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어서 모든 면에서 늘 동일한 존재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노쇠해서 떠나가는 것이 자신을 닮은 다른 새로운 것을 뒤에 남기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죠.
소크라테스여, 죽을 수밖에 없는 필멸의 존재는, 몸이든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이든 모두, 바로 그러한 기제를 통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에 참여합니다. 반면에,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는 그 방식이 다르지요. 그러니 모든 것이 본성적으로 자신이 낳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의아해할 필요가 없지요. 죽을 수밖에 없는 필멸의 존재에게 그러한 에로스의 열정이 늘 따라다니는 것은 이렇듯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 실레노스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산과 들에 사는 다이몬들인 “사티로스들” 중에서 늙은 자들을 가리킨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실레노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스스으올 등장하는 실레노스이다.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대개는 술에 취한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머리가 벗겨진 배불뚝이 노인으로 늘 술에 취한 채로 노새를 타고 다닌다. 항상 술에 취해 있지만 지혜로운 자로 유명했고, 예언 능력도 있었다. 사티로스를 소재로 한 극에서 실레노스는 사티로스들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해제]
플라톤: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경에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 중 하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리스톤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코드로스의 후손이고, 어머니 페리크티오네는 그리스의 일곱 현인 중 한 사람이었던 솔론의 후손이었다. 형제들로는 아데이만토스와 글라우콘이 있었다.
플라톤은 스무 살경에 소크라테스의 문하로 들어갔다. 어린 시절에는 유명한 문인들로부터 주로 문학을 공부했지만, 이때부터는 철학에 매진하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399년에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후에는 크게 실망해서 다른 제자들처럼 아테네를 떠나 메가라, 이탈리아, 시칠리아, 키레네 등을 여행하며 다양한 종파와 사상을 접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사상과 저작에 밑거름이 되었다.
마흔 살이 되어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서양 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 연구기관 중의 하나인 “아카데메이아(아카데미아)”를 창설했다. 이 학교는 아테네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아카데무스의 숲이라 불리던 곳에 세워져, 기원전 84년에 술라에게 파괴될 때까지 운영되었따. 여기에서 저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배출되었다.
기원전 366년과 361년에는 두 번에 걸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있던 도시국가 시라쿠사에 가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현실에서 실천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후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 후에는 기원전 347년에 죽을 때까지 자신이 세운 아카데미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는 일을 하였다.
* 소크라테스: 서양철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최초의 윤리철학자로 평가받는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경에 아테네에서 조각가이자 석공이었던 아버지 소프로니코스와 산파였던 어머니 파이나레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고은 아테네의 알로페케였고, 아테네의 열 개 부족 중에서 안티오키스 부족 소속이었다.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그는 젊어서 자연철학에 관심을 갖고 탐구했고, 아낙사고라스의 책들도 읽었으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여러 차례 참전하기도 했다. 관직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아테네 민주정에서는 열 개의 부족에 속한 자유민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평의회 의원을 했기 때문에, 그도 평의회 의원과 그 집행위원이 되었다. 그가 전쟁에 참전했을 때와 평의회 집행위원이었을 때의 일화는 이 책에 수록된 네 편의 글에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정치적 문제에 휘말려서, 결국 불경죄와 청년들에게 궤변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게 된다. 당시 아테네에는 기존의 민주정 세력과, 스파르타의 법을 새롭게 차용하고자 한 귀족적인 과두정 세력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 민주정 세력은 과두정 세력에 경고하는 의미로 소크라테스를 처형했다. 그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르침들은 민주정을 비난하고 과두정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의 제자와 친구들 상당수가 과두정 세력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애와 사상을 전해주는 문헌은 주로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글들인데, 그 글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못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탁월한 지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 그들의 시대와 아테네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던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의 아티케 지방에 자리잡고 있던 유명한 도시국가였다. 솔론의 개혁 후에 페이시스트라토스(기원전 600-527년경)가 참주(비합법적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통치자가 된 독제자, 그리스어로는 ‘티란노스’)가 되고 나서, 그의 아들인 히피아스(기원전 527-510년)를 끝으로 참주정은 막을 내렸다. 클레이스테네스(기원전 570-508년)는 참주 히피아스를 몰아내고, 기원전 508년에 기존의 전통적인 부족체제를 없앤 후, 아테네를 열 부족 174구역 체제로 바꾸었으며, 도편추방제를 도입하여 민주정의 토대를 닦았다. 얼마 후에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년경)가 등장하여, 아테네의 민주정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민주정은 확고해졌다.
아테네는 기원전 492-479년까지 지속된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격퇴하고 나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규합하여 델로스 동맹을 맺어 맹주가 되어 패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431-404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각 자신의 동맹군을 거느리고 패권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였다.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 전쟁을 계기로 고대 그리스는 쇠망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에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338년에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에게 정복당할 때까지 170여 년 동안 잠시 동안의 30인 참주정을 제외하고는, 매우 안정적인 민주정 체제가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아테네에는 유명한 철학자들과 소피스트들이 모여들었따. 자연철학자였떤 아낙사고라스(기원전 500-428년경)는 페리클레스의 초청으로 아테네에 와서 30여 년을 머물며 합리적인 자연철학을 전파했고, 소크라테스는 젊은 시절에 그의 책들을 읽었다. 가장 유명한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5-414년경)도 여러 차례 아테네를 방문하여 소피스트 특유의 인간중심적인 상대주의적 지식론을 가르쳤다. 또 한 명의 유명한 소피스트였던 고르기아스도 기원전 427년에 아테네로 와서 그 현란한 수사학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아테네는 종교적으로는 대단히 보수적이었고, 거기에 정치적인 의도까지 더해져서, 아낙사고라스와 프로타고라스를 불경죄로 추방하였고, 소크라테스까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소피스트로 몰아 불경죄로 사형에 처한다.
*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85-414년경)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로 상대주의를 설파했고, 고르기아스(기원전 483-376년경)는 ‘논증’이라는 의미에서의 ‘로고스’ 즉 언어의 힘을 강조했으며, 수사학으로 유명했던 트라시마코스(기원전 459-400년경)는 “정의는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 플라톤은 오직 지성을 통해서만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고, 영혼이 이데아를 발견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상기’이다. 인간의 영혼에는 이데아에 대한 지식이 선험적으로 존재
두 번째는 ‘변증’ 즉, 논리적 추론이다. 오직 이성을 통한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서만 참되고 온전한 지식, 즉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육체의 감각들은 방해만 될 뿐
세 번째는 ‘에로스’이다. 모든 인간 속에는 ‘에로스’를 추구하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고, 이 본성이야말로 참된 지혜, 즉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름다운 육체에서 시작해서 아름다운 미덕들과 아름다운 일들로 나아가고, 최종적으로는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파이돈]에서 다루어지고, 세 번째는 [향연]에서 다루어진다.
* 소크라테스는, 철학은 참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고, 참된 지혜는 육체의 모든 감각의 방해를 단절하고 오직 순수한 사유와 변증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이데아들에 대한 지식에 도달하는 것임을 밝힌다. 이것은 당시에 소피스트들이 상대주의적인 가치관 속에서 현실 경험 세계에서의 실용적인 지식을 추구했던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 [향연]은 기원전 416년에 아가톤이라는 비극작가가 아테네의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베푼 연회에 참석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연애의 신인 ‘에로스’를 예찬하는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한 내용을 담고 있다. [향연]의 그리스어 제목인 ‘심포시온’은 “함께 모여 술을 마신다”는 뜻이다. ‘에로스’는 신의 이름이기도 하고 ‘연애’를 가리키는 명사이기도 해서, 이 글에서는 이 둘이 서로 겹쳐 나온다.
‘에로스’는 일반적으로 “사랑으로 번역되지만 이 글에서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신들은 참된 지혜에 대해 ‘에로스’의 감정을 갖지 않는다. 참된 지혜는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신들에게 ”결핍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말이나 영어에서 ”사랑“은 ”결핍된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는다. 신들은 참된 지혜를 그 자체로 ”사랑한다.“ 감정적인 측면에서, 에로스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소유하기 위해 격렬히 욕망하고 사모하며 오매불망 그리워하며 함께 있고자 하고,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아주 뜨거운 감정이다. 따라서 이런 여러 특징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단어로 ”연애“를 선택했다.
우리말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 그리스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철학’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로소피아’에서 사용된 ‘필리아’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친구 간의 우애, 철학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을 가리키므로 “친애하는”이라고 말할 때의 “친애”에 해당한다. 다음으로는 ‘아가페’가 있는데, 이 단어는 존경의 뜻을 담은 사랑을 의미하는 까닭에, “경애하는”이라고 말할 때의 “경애”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무엇일까? ‘에로스’는 성애를 포함한 “연애”를 가리키는 열렬한 감정이자 욕망이다. “친애”와 “경애”에는 자신이 친애하고 경애하는 대상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지만, “연애”에는 그러한 욕망이 죽음보다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이 연회에서 소크라테스보다 앞서 에로스를 예찬한 사람들은 모두 에로스 신을 자신의 연애 대상 또는 예찬의 대상으로 여기고서, 에로스 신은 완전하고 온전히 아름답다는 전제하에서 예찬을 이어간다.
첫 번째 화자인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우리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미덕을 행할 동기를 부여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연애 감정을 품은 윗사람과 그의 연인인 소년이나 젊은이이가 에로스로 묶여 있을 때,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해서 모든 일에서 미덕을 추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이 글에서 에로스는 일차적으로 에로스의 감정을 품은 성인 남자와 그가 연애하는 자기 연인인 소년이나 젊은이 간의 동성애에 적용된다. 즉, 에로스의 전형은 동성애였다.
두 번째 화자인 파우사니아스는 에로스 신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말한다. ‘범속의 에로스’는 성애를 중심으로 성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활동하고, ‘천상의 에로스’는 진정한 “연애” 속에서 아름다운 미덕을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활동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애를 추구하는 일반 사람들의 연애가 ‘에로스’라 불렸고, 그러한 에로스는 아름다운 미덕에 대한 사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연애의 타락한 형태로 여겨지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눈에는 용기와 절제 같은 미덕을 갖춘 소년이나 젊은이를 연애하는 동성애가 주로 성애를 중심으로 갖는 이성애보다 우월한 것이었다. 즉, 그들은 성애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를 두둔하거나 찬양한 것이 아니었다.
세 번째 화자인 에릭시마코스는 모든 사람 안에서는 ‘에로스 신’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것을 단지 사람들 사이의 연애로만 국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즉, 모든 전문 기술자(장인)의 일 속에서도 에로스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로스는 자신에게 결핍된 아름다움을 욕망하고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전문 기술들도 에로스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네 번째 화자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에로스가 자신의 반쪽을 찾아서 완전함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아주 오랜 옛날에 인간에게는 남성, 여성,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둘 다 가진 남녀추니가 존재했고, 인간의 능력도 대단해서 신들에게 반기를 들려고 했다. 그러자 제우스 신이 인간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 반으로 쪼개놓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반쪽을 찾아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찾아다니게 되었는데, 이것이 ‘에로스’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는 모두가 에로스 신을 예찬의 대상으로 보고 이야기를 해왔지만, 자기는 에로스 신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얘기해 보겠다고 말하면서, 젊었을 때 ‘디오티마’라는 이방 예언녀에게서 들은 얘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먼저 에로스의 탄생과 기원에 대해 들려주면서, 에로스는 신이 아니고 신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 즉 ‘다이몬’(정령 또는 신령)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에로스가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망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로스는 “자신에게 결핍된 아름다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정의되지만, 사실은 아름다움을 향유하여 그 안에서 불멸과 불사를 출산하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하다. 즉, 에로스의 원인이자 목적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신들과는 달리, 죽을 수밖에 없는 필멸의 존재들이 불멸과 불사를 획득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을 지칭하는 에로스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잉태하고 있다가, 아름다운 것을 만나서 그 안에 출산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결국 에로스는 불멸과 불사에 대한 욕망과 추구를 지칭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에로스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몸을 연애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운 일과 미덕을 연애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거기에서 아름다움 그 자체, 즉 이데아를 관조하고 직관하는 경지로 올라갔을 때에 완성된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데아를 직관하기 위한 것이고, 철학의 수단은 이성에 의거한 추론과 변증이다. 따라서 철학을 하는 것, 즉 이성적인 변증을 통해 참된 것들인 이데아들에 대한 지식을 얻어 진정한 지혜에 이르는 것이야말고 고유한 의미에서의 에로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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