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득록] 정조대왕어록_이산, 이성, 조선의 제22대 임금 즉위년 1776
* 불교에서는 이를 월인천강, 즉 천 개의 강물에 도장 찍힌 달이라 한다. 임금인 자신의 덕화가 널리 만백성에게 고루 미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호이다. ‘만천명월주인옹’
* 호 ‘홍우일인재’ 해와 달의 광채가 한 사람에 의하여 널리 퍼진다.
* 일득록 또한 날마다 살핀다는 뜻이다.
_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법,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나의 잘못은 남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나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요, 나의 미덕을 칭찬하는 사람은 나를 해치는 적”이라 했다. 남의 비판을 달게 받을 줄 알아야 더 큰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공경히 하는 것은 예를 차리는 것이요, 예를 차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내면의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데 있다.
“안연이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는 극기복례’의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하였다. 이 네 가지는 몸의 작용인데, 내면의 마음에서 말미암아 외면의 행동으로 반응하는 것인데, 외면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내면의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 학문이란, 다만 날마다 일상적으로 행동하는 데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의 경우에는 행동하고 멈추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고, 집안의 경우에는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고, 나라의 경우에는 적임자에게 맡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고, 책의 경우에는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쉽고 가까운 것을 버려 두고, 다시 어디에다 힘을 쓴단 말인가!
일상의 모든 것이 학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가깝고 쉬운 것은 싫증내고, 고원하고 어려운 것만 추구한다. 일상적인 것은 하찮게 여기고, 희귀한 것만 중요시한다.
“도가 가까운 데 있는데도 먼 데서 찾고, 일이 쉬운 데 있는데도 어려운 데서 찾는다.” [맹자]
* 비록 재주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학문에 힘을 쓰려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디고 둔한 사람이 고생스럽게 학업에 힘쓰는 것만 못하다.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고 지혜가 아무리 비상하다 한들, 무섭게 파고드는 사람을 당해 낼 수 없다. 조선의 학자 백곡 김득신(1604~1684)이 그랬다. 그는 타고난 둔재였다. 그것도 자타가 공인하는 둔재였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했다. 이해되지 않는 글은 이해될 때까지 읽었다. 만 번 이상 읽은 글만도 36편이었다. 심지어 [사기] <백이열전>은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한다. 그 결과 마침내는 시인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학문에 힘쓰는 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제 스스로 한계를 긋지 않는다. 나보다 노둔한 사람도 없을 터이나, 결국에는 성취가 있었으니, 오직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백곡집]
* 성인은 남달리 뛰어난 점이 있었던 게 아니고, 단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멈추려 했을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문을 나서기만 하면, 곧장 한달음에 내달리고자 다른 샛길을 찾다가, 끝내는 경황없이 허우적거리게 된다. 배우는 자가 비록 일일이 성인의 공부를 뒤좇지는 못할지라도, 그 학문의 방도는 마음속으로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먼 길을 갈 때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고, 높은 곳에 오를 때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중용]
첫술에 배부를 리 없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다. 학문의 길이 비록 멀고도 멀지만, 한 걸음씩 차근차근 성실하게 나아가면, 언젠가는 최고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 칠서란 유가의 핵심이 되는 주요 경전인데 대학, 중용, 논어, 맹자의 사서와 시경, 서경, 주역의 삼경을 이른다.
* 일은 크건 작건, 신중히 해야지 허술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작은 일을 허술하게 하게 되면, 큰 일도 허술하게 하게 된다. 큰 일을 허술하게 하지 않는 것은, 작은 일을 허술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박시란, 박시제중의 뜻으로 ‘은택을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말이다. 공자는 이것을 성인의 일이라 했다. [논어] <옹야>
모름지기 선비하면, 은택을 널리 베풀어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자기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지식인의 현실 참여요, 자식인의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소명이기도 하다.
“옛사람은 뜻을 얻으면 은택이 백성에게 보태졌고, 뜻을 얻지 못하면 자기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냈다. 그러므로 곤궁하면 자기 몸을 홀로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아울러 선하게 하는 것이다.” [맹자] <진심 상>
만일 선비가 뜻을 얻지 못했을 때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수양하여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산에 맹수가 있으면 그 때문에 나물을 캐지 않고, 나라에 충신이 있으면 그 때문에 간사한 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한서]<합관요전>
사나운 호랑이가 사는 산에 나물을 캐러 가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나라에 올곧은 선비가 있으면, 그 눈치를 살피느라 간사한 자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한다. 이것이 곧 ‘자기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의 효과이다.
* 큰 간흉은 용납해서는 안 되고, 작은 잘못은 용납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만약 큰 간흉을 용납하면 반드시 나라는 어지럽힐 것이요, 작은 잘못을 용납하지 않으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_ 큰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이요, 작은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한 처벌이다.
* 마음을 캐내는 것은 말에 달려 있고, 행적을 집어내는 것은 일에 달려 있다. 마음이 태연한 사람은 말이 느긋하고, 마음이 분한 사람은 말이 사납고, 마음이 원통한 사람은 말이 괴롭고, 마음이 다급한 사람은 말이 급박하고, 마음이 겁약한 사람은 말이 황당하고, 마음이 허탄한 사람은 말이 어지럽고, 마음이 거짓된 사람은 말이 왜곡되며, 마음이 유약한 사람은 말이 혼란하다. 말을 따라 마음을 헤아리고, 마음을 미루어 행적을 논하면, 사람이 어찌 숨기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_ 말은 마음의 거울이라 한다. 말이란 마음속에 쌓인 감정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아낼 수도 있다.
* 사람들이 사건을 잘못 판단하고 사물을 잘못 보는 것은, 안목이 높지 않아서이다.
_ 그래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하는 것이다. 꾸준히 관찰하고, 꾸준히 사색하고, 꾸준히 연구하여, 인식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이 열리게 된다.
* 시와 문 모두 그 사람을 관찰하기에 충분한 것이지만, 시가 더욱 근사한 것은 시가 성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_ “사람의 소리 가운데 정묘한 것이 말이 된다. 시는 말 가운데 또한 정묘한 것이다. 시는 성정에 근본을 두며, 속이거나 꾸며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율곡전서]<정언묘선서>
사람의 근본도 마음이요, 시의 근본도 마음이다. 그러므로 시는 그 사람을 살피는 바탕이 될 수 있다.
* 여러 사람들이 헐뜯는 가운데서 실정을 캐어 내는 것과, 보답받지 못할 곳에 은덕을 베푸는 것은, 내가 그윽이 즐겨 하는 바이다.
_ 여러 사람이 헐뜯어도 사실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정조가 옥사에 신중을 기한 것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은혜를 베푸는 것은 보답을 바라서 하는 게 아니다. 정조자 애민에 힘쓴 것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마음으로 망설이면서 결단하지 못하고, 입으로 우물쭈물 말하지 못하는 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_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거나,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것은, 무능하거나 나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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